♤ 완전한 행복이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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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군위넷 댓글 0건 작성일 20-06-03 08:29본문
예전에 읽었던 "꽃들에게 희망을" 이란 책을 보면
자신의 참모습을 찾기 위해 많은 어려움을 겪다가
나비로 다시 태어나는 한 마리 애벌레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 책의 내용에는 끝없이 올라가는 애벌레의 기둥 속에서
자신이 왜 올라가야 하는지 또 올라가면 꼭대기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는 채
남들이 올라가니까 따라서 올라가는 애벌레들의 대화가 나온다.
그는 꼭대기에서 이렇게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야, 이 꼭대기에는 아무것도 없네!"
다른 애벌레가 대꾸했습니다.
"이 바보야, 조용히 해! 저 밑에서 듣잖아.
'저들이' 올라오고 싶어하는 곳에 우리는 와 있는 거야. 여기가 바로 거기야."
줄무늬 애벌레는 등골이 오싹했습니다.
이렇게 높이 올라온 것이 별것이 아니라니!
아래에서 볼 때만 좋은 것처럼 보였을 뿐이었구나.
위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다시 들려왔습니다.
"야, 저기를 봐라, 또 다른 기둥이 있네...... 저기에도 또 있고...... 사방에 다 있네!"
줄무늬 애벌레는 실망과 더불어 분노를 느꼈습니다.
"내가 올라온 이 기둥이 단지 수많은 기둥들 가운데 하나라니......
숱한 애벌레들이 기어오르는 것이 아무 곳에도 이르는 길이 아니라니!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는 것이 분명한데......,
하지만 다른 무엇이 있단 말인가'하고 신음을 했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우리 인간들의 사는 모습이
바로 저런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남들이 사는 대로 똑같이 살면서
주어진 상황에 순응하며, 먹고 입고 자는 것에 최우선의 가치를 두고
다람쥐 쳇바퀴처럼 되풀이 되는 삶을 살고 있다.
그것은 염세주의 철학자인 쇼펜하우어가 말한
'맹목적인 삶의 의지'에 따른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이 우스개 소리로 말 하듯이
'살려고 먹는지 먹으려고 사는지' 헷갈리는,
태어났고 살아있기에 그냥 사는 맹목적인 삶인 것이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끝없이 무엇을 추구하지만
그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허전하고 채워지지 않는 마음 때문에
다시 목표를 정해서 올라가고 이것을 반복하다가
자신이 왜 태어났는지도 알지 못한채
통장 몇 개와 아파트 몇채를 남기고 죽는 것이다.
누구든지 현재 지금 추구하고 있는 목적이 달성된다면
100% 완전히 그리고 또 영원히 행복할 것이라고 확신할 사람이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1%의 부족함도 없이 완전히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까!
아무리 돈이 많은 사람도, 세상 제일의 권력이나 명예를 가진 사람도
완전한 행복을 누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가진 것을 지키고 유지하려고 정신적으로는 더 힘들고
고통받는 삶을 살고 마음속의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 때문에
여전히 갈등하며 살아갈 것이라 생각한다.
그 때문에 남이 부러워하는 돈, 명예, 권력 등을 가졌어도
자살을 하는 사람이 종종 생기는 것이다.
이처럼 왜 모든 것을 가지고 있고,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완전한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일까?
그 해답은 인간의 완전한 행복은 외부의 물질적이고
사회적인 것에서는 절대로 얻어 질 수 없고,
오직 내면의 자기 본성을 회복하는 깨달음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인간 내면의 근원적인 갈등과 공허함,
아무리 현실세계의 물질로 채우려고 해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은
오직 본성을 회복하여 진정한 깨달음에 이르러
우주와 완전히 하나가 되어야 채워지고
그때야 비로소 인간이 태어난 목적을 이루었음에
더 이상의 갈구나 불만족이 없는 완전한 행복 그 자체가 되어
임제 의현의 말대로 "하루에 황금 만냥을 쓰는듯한 자족한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존재한다는 것은 목적이 있기 때문이고
존재의 참 목적을 이루어야만 완전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존재의 참 목적은 자신의 본성회복 즉, 깨달음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완전한 행복 즉,
인간의 이상향을 이룰 수 있는 길은 깨달음 뿐인 것이다.
그래서 예수도 "네 안에 하나님의 왕국이 있다.
그것을 찾으면 현실세계에서 네가 원하는 모든 것을 얻으리라."
또 "천국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할 것이 아니고 바로 네 마음 안에 있다." 했고
석가모니도 "네 안에 여의주가 있다. 네 안의 불성을 회복하라."고 했다.
현실 세상에서 얻는 모든 것은 일시적인 위로나 만족을 줄 수는 있지만
인간에게 완전한 유토피아를 실현시켜 줄 수 없고
오직 내면의 본성을 회복하여 깨달음을 얻어야 만이
더 이상 방황하지 않는 완전한 이상향이 실현됨을 말했던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내면에 자신이 태어난 목적인 본성으로의 회귀를
속삭이는 음성이 들리기에 어떤 것을 해도 만족함이 없고
설령 원하던 목표를 달성한다해도 이에 만족함이 없어
끝없이 새로운 목표를 만들어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는 옛부터 이 내면의 음성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기에
" 행복은 외부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에 있다."
라고 수많은 책이나 현자의 입을 통해서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수행을 통해서 본성에 다가갈수록
마음이 고요하고 편안하며 행복해지는 것은
우리 존재의 목적에 다가가기 때문이다.
우리 존재의 목적은 깨달음이고
오직 깨달음을 통해서만이 완전한 행복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애벌레는 나비가 되기위해 태어나듯이
인간은 신이 되기위해 태어난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기 위해선 고치가 되어야 하듯이
인간도 신이 되기 위해선 외부로 눈을 돌릴 것이 아니라,
오직 내면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사랑합니다.
출처 : 자운선가님 카페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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